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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헛것이란 말의 위대한 통찰
    헛것들에 대한 고찰 2020. 6. 19. 10:10

    참으로 매력적인 말 ‘헛것’

     

    우리말에 헛것이라는 말이 있다.

    허깨비라는 말과 동의어로 둘의 사전적 해석은 같다.

    "헛것(허깨비): 기(氣)가 허하여 착각이 일어나, 없는데 있는 것처럼, 또는 다른 것처럼 보이는 물체"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기가 허하여라는 헛것 경험의 전제는 동의하기 어렵다. ‘(氣)라고 하는 것을 실재하는 그 무엇으로 전제하고 뜻풀이를 한 것이다. 착각의 원인을 쇠하거나 허해진 기로 설명하는 것도 비과학적이다. 

     

    기가 허하다는 의미를 우리의 신체적 조건과 상황이 매우 허약한 상태로 이해하자고 옹호할 수 있다. 그러나 사전적 정의에 은유가 삽입되는 것이 엉뚱하기 그지없다. 이 은유를 인정한다 해도, 신체적 상태가 매우 안 좋은 조건(그래서 외부 자극을 제대로 정보처리를 할 수 없을 때에)에서 헛것을 볼 수도 있지만, 꼭 그런 경우에만 헛것이 보이는 것은 아니기에 온전한 설명은 결코 아니다. 이 부분은 “우리는 귀신을 어떻게 보게 되는가?”라는 글에서 자세히 다루고자 한다.

     

    따라서 헛것에 대한 사전적 정의는 이렇게 고쳐져야 한다.

    "헛것(허깨비) : 감각적 또는 뇌 활동의 인식 오류에 의해 실재하지 않지만 감지되고 믿게 되는 대상이나 그 관념"

     

    헛것이란 말은 일상어이지만, 우리의 인식과 감각의 허점과 착오를 이처럼 탁월하게 표현한 관념과 말이 또 있을까 싶다. 우리가 경험했던 수많은 허상들, 감각적 오류, 잘못된 믿음으로 실재하지 않은 것을 존재와 재현으로 해석하는 믿음의 함정을 표현하는데 가장 정확한 용어이다. ‘헛것은 귀신, 정령, , 초자연적 존재 등등 우리가 잘못된 믿음이나 정상적인(?) 뇌의 활동으로 경험하는 모든 대상들을 지칭하는 최적의 용어이다

     

    일상어에서 인식론 용어로

     

    헛것은 환영, 환상, 환각, 환시, 환청, 착각 등의 많은 관념어들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대체어가 될 수 있다. 또한 illusion, fantasy, hallucination, ghost, phantom, devil, spirit, delusion 등 영어 단어들도 문맥에 따라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한다고 믿는 것들을 번역하는데 가장 정확한 우리말이 될 수 있다.

     

    헛것이란 말은 단순하면서 풍부한 의미를 담고 있다. 거기에 더해 실천적 의미까지 함의하고 있다.

     

    헛것이라는 말은 지칭하는 대상들을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직관적으로 연상시킨다. 따라서 대상들의 본질, 즉 의미되는 내용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다.

     

    아울러 헛것을 보았다” “말짱 헛것이다등의 용법처럼 우리의 인식과 정보처리의 오류를 그 자체에 내포하고 있어, 인식주체 오류의 함의까지 온전히 담고 있다. 따라서 영어의 non-existentmeaningless의 의미를 동시에 가지는 말로 폭넓게 활용될 수 있다.

     

    한국문화의 배경에서만 힘을 발휘하겠지만, 헛것은 설화의 서사를 통해서도 비판적 사고의 실천적 의미를 강화시켜 준다. 우리 전통문화에서 대표적인 헛것인 도깨비를 보자. 간밤에 음침한 동네어귀에서 끙끙대며 씨름을 하였던 헛것이나 분출한 욕망으로 한바탕 흥건히 뒹굴었던 헛것도 다음 날 아침에 가보면 빗자루나 부지깽이에 불과했다. 결국 제대로 된 재조사를 해보니 초자연적 존재는 없고, 내가 문제였다는 이야기다. 헛것을 보거나 현혹되었다는 인식에 대한 성찰 이야기이다.

    물론 이런 설화의 문화적 맥락과 그 설화에 투영된 인간의 욕망 등 서사의 의미와 구조는 인식론적 성찰을 교훈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일차적 목적은 아니다. 다만 헛것이란 말이 지닌 인식론적 의미를 설화에서 극적 반전을 통해 통쾌하게 보여 주며, 착각과 인식오류 가능성, 그리고 그것들이 희노애락의 욕망들과 어떻게 결부되는지를 재미있게 확인할 수 있다.

     

    온갖 미신과 귀신의 이야기로 가득 찬 우리의 전통사회에서 옛사람들이 또 한편에서는 실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인식과 그 대상을 헛것이라고 표현했다는 점은 대단한 통찰력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나는 앞으로 많은 경우 실재하지 않은 것을 존재한다고 믿는 대상 전반을 지칭하는데 헛것이라는 용어를 쓰고자 한다↗앞으로 공부도 하고 나누기도 할 겸 ‘헛것들에 대한 고찰’을 써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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